퇴사썰 풀러 왔음

일단 본인의 인생관을 먼저 알아보자. 인생은

이거다. 이게 뭔데요 이 괴랄한 식이 뭐냐고 묻는다면, 슈뢰딩거 방정식(시간 의존)이다.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방정식으로, 양자역학과 슈뢰딩거 방정식은 붕어빵과 팥소같은 관계. 저 방정식, 당연한 소리지만 시간 비의존 방정식도 존재한다.

미시세계는 거시세계와 달라서 정확한 관측이 어렵다. 그래서 정확한 결과 대신에 음 저 식에 때려박았는데 대충 여기서 여까지 나옵니다가 된다. 인생도 어느정도 가닥은 잡을 수 있지만, 정확한 범위 예측은 힘든것처럼.

만날 사람이면 기를 쓰고 피하려고 해도 만나지고, 헤어질 사람이면 기를 쓰고 만나려고 해도 피해진다.


퇴사 절차랄것도 없었다.

어제 불러서 여전히 느리다, 이 일이랑 안 맞는다고 얘기하면서 길어야 5월 13일이라고 하면서 이직 준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, 필요하면 조절해주겠다고 하더라. 그래서 토요일이 말일이니까 깔끔하게 내일까지 하고 관둔다고 했다.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와 함께.

그리고 어제까지 일하고 스캔뜨고, 오늘 업로드하고 짐 싸고 서류 정리하고 끝났다. 거진 두달 반정도 일한 흔적을 정리하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. 컴퓨터는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것이고, 나는 내 짐을 치우고 받았던 것들만 정산하면 된다.

정리 끝났으면 퇴근하래서 10시 좀 넘어서 퇴근했다.


일머리가 없다는 얘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은 없었다.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,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때부터 나는 말 그대로 나가달라는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. Jump rope challenge를 600일이 넘게 할 정도의 근성을 가진 내가. 여기서 나가게 되더라도 잃을 것은 월급말고 없다고 생각해서, 의욕이 들지 않았다. 갑자기 150%를 처리하게 됐을 때도 영문을 모를 정도로.

일이 단순히 안 맞는 것도 있지만, 한달차를 기점으로 마치 시그모이드 함수를 보는 것 같았다.

Sigmoid function

시그모이드는 S자 혹은 적분 곡선을 길게 늘인것처럼 생긴 함수로, 인공지능에서 활성화 함수로 사용되는 함수 중 하나이다. 다른 함수로는 ReLU가 있지만 패스. 이 함수는 PCR curve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단조함수이고, 출력이 0 or 1로 익스트림하다. 한달 전에 0이었던 게 갑자기 한달차가 되자 1이 되고, 여반장처럼 상황이 바뀐다.

사칙연산 다 배웠지? 그럼 이제 슈뢰딩거 방정식 풀어볼까? 저 이거 모르는데요? 어, 왜 편미분 못 해? 아니 갓 사칙연산 배운 사람이 미적분을 어떻게 합니까, 삼각함수에 인수분해도 모르는데. 케이스도 한두가지가 아닌데다가 모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면 왜 몰라요? 가 따라온다. 그렇다고 독단적으로 하려고 하다가 시간이 지연돼도 왜 빨리 안 물어보냐고 혼난다. 뭐 어쩌라는겨 싶더라고.

심지어 전임자가 전산에 잘못 기록한 것 때문에 내가 혼난 적도 있었다.


여기서 나가게 되더라도 월급 말고는 잃을 게 없다, 맞는 말이다. 그리고 그래서 오히려 판단이 더 빨랐다.

이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일이 X같긴 했지만 에리본씨나 뮤츠씨랑 위아더월드가 되어서 친해지고, 그러면서 힘든 거 있으면 일 끝나고 혹은 밥 먹을 때 얘기하면서 풀어갔었다.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. 일 외적으로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.

내가 식사를 하건 안 하건, 밥을 먹고 게임을 하건 그림을 그리건 백준을 풀건 잠을 자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. 저 쪽에서 신경을 안 쓰니까 나도 신경을 안 쓴다. 그래서 정작 힘든 걸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.

그래, 어제 이 얘기도 했더니 ‘같은 월급 받고 일하는데 님이 일을 덜 해서 그런가봄.’ 하던데 이건 이 가설이 맞아도 에바고 틀려도 에바다. 만약 이게 맞다면, 시간복잡도가 더 높다는 이유로 사람을 공기취급해도 되나? 이게 틀리다면, 무슨 근거로 사실 확인도 없이 그렇다고 단정짓지?


미래, 당연히 걱정된다. 그런데 일단 당분간은 쉬고싶다.

우울증 증상이 발현되고 나서 식욕이 떨어진것도 있지만, 잠을 제때 못 잤다. 식욕은 원래 멘탈이 나가거나 뭐에 열중하다보면 떨어지긴 하지만. 잠을 제때 못 잘 정도로 심각했단 말인가, 이게 체감되더라. 수요일에도 자다가 1시간 일찍 깨서 선잠잤고, 오늘도 그래서 선잠잤다. 심지어 오늘은 그간 누적된 피로때문에 제때 칼기상도 못 하고 스누징하고 지하철 탔다. (지하철 생각보다 가까움)

밥은 애초에 식욕이 떨어져서 많이 먹어봐야 반공기, 점심은 혼밥이라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.

이 상황에서 여기까지 버텨 온 내가 용하다.


그래서, 그 어시스트 잘 해주시던 잘생긴 분?

엔딩이랄 거 있나, 애초에 시작도 안 했는데. 두근두근 이벤트 그딴것도 없었습니다. 아마 금방 잊어버리시지 않을까, 생각중이다.

내가 인사하면 놀라면서 받고 가위 빌리려고 말 걸었더니 어이 깜짝아 하시던데. 대체 왜

나 심지어 뒤에서 부르지도 않았음. 옆에서 불렀지. 전기 쏘셨나요 아뇨 심지어 만지지도 않았음.